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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해학을다룬작품

작성자명관**
조회수1774
등록일2007-04-07 오후 4:04:02
풍자와해학을다룬작품
kje12700 (2007-04-03 22:24 작성)
신고
1. 선덕여왕의 지혜

27대 임금 덕만은 시호가 선덕여대왕이다. 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정관 6년 임진년(632년)에 왕위에 올라, 나라를 16년 동안 다스렸다. 미리 알아낸 일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 일은 이렇다. 당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으로 그린 모란 그림과 그 씨 서 되를 보내 오니, 왕이 꽃 그림을 보고 말했다.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다."
이내 뜰에 심었더니 그 꽃이 피어서 떨어질 때 과연 그 말과 같았다.
두 번째 일은 이렇다. 영묘사 옥문지에 겨울인데도 개구리 떼가 모여 사나흘 동안 울었다. 나라 사람들이 이상스럽게 여겨 왕에게 물으니, 왕은 각간 알천, 필탄 등에게 급히 명해, 정예 군사 2천을 뽑아 서울 서쪽으로 급히 가, 여근곡을 탐문하면 반드시 적병이 있을 터이니 덮쳐서 죽이라고 했다. 두 각간이 명을 받고 각기 군사 천 명씩 거느리고 서울 서쪽으로 탐문하니, 부산 아래에 과연 여근곡이 있었다. 백제 병사 5백인이 거기 와서 숨어 있으므로 모두 잡아 죽였다. 백제 장군 우소란 자는 남산 고개 바위 위에 숨어 있어서 포위해 쏘아 죽였다. 또한 후속 부대원 1천 3백 인이 오거늘, 공격해서 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셋째 일은 이렇다. 왕이 병이 없을 때, 여러 신하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도리천 가운데 장사지내라." 신하들이 그 자리를 몰라 어느 곳인가 물으니, 왕이 말했다.
"낭산 남쪽이니라."
그 달, 그 날에 이르러 왕이 과연 세상을 떠나거늘, 신하들이 낭산 남쪽에 장사지냈다. 십여 년 뒤에 문무대왕이 왕의 무덤 아래에다 사천왕사를 지었다. 불경에 이르기를,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 했다. 그래서 대왕이 신령스러운 줄 알았다. 그 당시에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어째서 모란꽃과 개구리 두 가지 일이 그런 줄 아셨습니까?&uot;
왕이 말했다.
"꽃은 그렸으면서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는 줄 알았다. 그것으로 당나라 황제가 짝 없는 나를 놀렸다. 개구리는 성낸 모습이라 병사의 형상이다. 옥문은 여자 성기이다. 여자는 음이라서 그 색이 희다. 흰색의 방위는 서쪽이다. 그래서 병사가 서쪽에 있는 줄 알았다. 남자 성기가 여자 성기에 들어갔으니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쉽게 잡을 줄 알았다."
이에 신하들이 그 뛰어난 지혜에 탄복했다. 세 색깔의 꽃을 보낸 것은 신라에 세 여왕이 있을 줄 알아서인가. 선덕, 진덕, 진성이라는 이들이 세 여왕이다. 당나라 황제도 알아맞추는 능력이 있었다. 선덕이 영묘사를 세운 일은 양지 스님의 전기에 자세하게 실려 있다. 별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왕 때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
<삼국유사>

2. 김효성의 기지

김효성(金孝誠)은 사랑하는 여인이 많았다. 부인도 또한 질투가 지나치게 심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공이 밖에서 들어오다가 문득 보니 부인의 자리 옆에 검정색으로 물을 들인 모시가 한 필 놓여 있었다. 이에 공이 물었다.
"저 검정 모시는 장차 어디에 쓰려는 것이기에 부인의 자리 곁에 놓아두었소?"
그러자 부인은 정색을 하며 대답하였다.
"당신이 뭇 첩들에게 혹하여 본 아내를 원수처럼 대하시기에, 저는 결연히 중이 될 각오를 하고 물을 들여 놓았던 것이오."
공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본래 호색하여 기녀(妓女)·여의(女醫)로부터 양인(良人)·천인(賤人)·현수(絃首)·침선비(針線婢)에 이르기까지 자색만 있다 싶으면 반드시 모두 정을 통하였소. 그런데 여승의 경우에는 아직 한번도 가까이한 적이 없었소. 그대가 여승이 될 수만 있다면 그는 정작 내가 바라는 바요."
부인은 끝내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검정 모시를 접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칠 뿐이었다.
<청파극담>

3. 해학을 즐김

임백호(林白湖) 제(悌)는 기개가 호방하여 예법의 구속을 받지 않았다. 그가 병이 들어 장차 죽게 되자 여러 아들들이 슬피 부르짖으니 그가 말하기를
"사해(四海) 안의 모든 나라가 황제라 일컫지 않는 자 없는데, 유독 우리 나라 만이 예부터 그렇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누방(陋邦)에 사는 신세로서 그 죽음을 애석히 여길 것이 있겠느냐?"
하며, 명하여 곡(哭)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또 항상 희롱조로 하는 말이
"내가 만약 오대(五代)나 육조(六朝)같은 시대를 만났다면 돌려가면서 하는 천자(天子)쯤은 의당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한 세상의 웃음거리로 전했었다.
임진(壬辰)의 변란에 이르러, 한음(漢陰) 이정승(李政丞)이 명(明) 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을 반접(伴接)하자, 그는 한음의 인물을 대단히 추앙하여 심지어는 감히 말하지 못할 말까지 하는 것이어서, 일은 비록 진정이 아닐지라도 역시 스스로 편안하지 못했다.
이백사(李白沙)는 회해( 諧)를 잘하는데 어느날 야대(夜對)가 있어 시골 구석의 누한 습속까지도 기탄없이 다 아뢰는 것을 즐겁게 여겼으며 마침내 임백호의 일에까지 미치자 주상은 듣고서 웃음을 터트렸다. 백사는 또 아뢰기를
"근세에 또 웃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니 주상이
"누구인가?"
고 묻자, 대하기를
"이덕형(李德馨)이 왕의 물망에 올랐답니다."
하여, 상은 크게 웃었다. 백사는 이어 아뢰기를
"성상의 큰 덕량이 아니시라면 제놈이 어찌 감히 천지의 사이에 용납되오리까?"
하자, 상은
"내 어찌 가슴 속에 두겠느냐?"
하고 드디어 빨리 불러오게 하여 술을 내려 주며 실컷 즐기고 파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희학(戱謔)을 잘하도다.]하였는데 백사가 그 재주를 지녔다 하겠다.
<성호사설>

4. 공당 문답

공(맹사성)이 온양으로부터 조정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비를 만나서, 용인(龍仁) 여원(旅院)에 들렀더니, 행차를 성하게 꾸민 어떤 이가 먼저 누상에 앉았으므로 공은 아래층에 앉았었다. 누상에 오른 자는 영남(嶺南)에 사는 사람으로서 의정부 녹사(綠事) 취재(取才)에 응하러 가는 자였다. 공을 보고 불러서 위층에 올라오게 하여 함께 이야기하며 장기도 두었다. 또 농으로 문답하는 말 끝에 반드시 '공' '당'하는 토를 넣기도 하였다. 공이 먼저,
"무엇하러 서울로 올라가는공"
하였더니,
"벼슬을 구하러 올라간당"
하였다.
"무슨 벼슬인공"
하매,
"녹사(綠事) 취재(取才)란당"
하였다. 공은 또,
"내가 마땅히 시켜줄공"
하매, 그 사람은 또,
"에이 그러지 못할 거당"
하였다. 후일에 공이 정부에 앉았는데, 그 사람이 취재차로 들어와 뵈었다. 공이 이르기를,
"어떻게 되었는공"
하매, 그 사람이 비로소 깨닫고는, 갑자기 말하기를
"죽여지이당"
하니, 한 자리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괴이하게 여겼다. 공이 그 까닭을 얘기하매, 모든 재상이 크게 웃었다. 드디어 그 사람을 녹사로 삼았다. 그리하여 공의 추천을 입어서 여러 차례 고을의 원을 지내게 되었다. 후인들이 이를 일러, [공당 문답]이라 하였다.
<연려실기술>

5. 정지상과 김부식

시중 김부식과 학사인 정지상이 한 시대에 문장으로 명성이 같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지상의
"절에서 염불소리 끝나니 하늘빛이 유리처럼 맑다."
라는 싯구가 있었는데, 부식이 좋아해서 자기의 시로 만들려고 요청했으나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한다. 나중에 지상은 부식에게 죽음을 당해서 무서운 귀신이 되었다. 하루는 부식이 봄에 읊는 시에,
"버들빛은 천가닥이 푸르고 복사꽃은 만 송이가 붉도다."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상의 귀신이 부식의 뺨을 치면서
"천 가닥, 만 송이를 누가 헤아려 보았느냐? 어찌 '버들빛은 실실이 푸르고, 복사꽃은 송이송이 붉다.'고 하지 않느냐?"
하였다. 부식이 마음 속으로 매우 싫어했다.
나중에 어느 절에 들렀다가 우연히 변소에 갔다. 정지상의 귀신이 부식의 불알을 꽉 붙잡고 묻기를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어찌 얼굴이 붉느냐?"
하였다. 부식이 천천히 말하기를
"건너편 산 언덕 단풍이 얼굴에 비쳐서 붉다."
라 하였다. 정지상 귀신이 더욱 불알을 꽉 잡고 말하기를
"무슨 가죽주머니냐?"
하니 부식이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는 쇠주머니냐?"
고 하면서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다. 정지상 귀신이 더욱 힘주어 불알을 잡으니 부식은 마침내 변소에서 죽었다.
<백운소설>

6. 목은 이색의 대구(對句)

고려 때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중국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했다. 이때 학사 구양현(歐陽玄)이 그를 변방 사람이라 하여 경솔히 여기고 글한 짝을 지어서 조롱하는 것이다.
"짐승의 발자취와 새의 발자취가 어찌 중국에 와서 왕래하느냐?"(獸蹄鳥迹之道 交於中國)
하자, 목은은 즉석에서 대답하기를,
"개 짖고 닭 우는 소리가 사방에 들려오고 있다."(犬吠鷄鳴之聲 達于四境)
하여 구양현을 놀라게 했다. 짐승의 발자취와 새의 발자취가 어찌 중국에 와서 다니느냐 ? 한 것은 우리를 극도로 멸시하여, 너희들 새나 짐승같은 것들이 어찌 감히 우리 중국 땅을 더럽히느냐 하는 글이다.
그러나 여기에 화답한 목은의 시가 더욱 묘하다.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가 사방에 들려옵니다. 즉 이것은 우리 조선을 새나 짐승으로 취급한다면 당신네 중국은 역시 개나 닭이지 뭐냐는 기막힌 풍자였다. 구양현은 기이히 여기고 또 글 한 짝을 지었다.
"잔을 가지고 바다에 들어가니, 바다가 큰 줄 알겠도다."(持盃入海 知多海)
하자, 목은은 또 즉석에서,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고, 하늘을 작다고 하는도다."(坐井觀天 曰小天)
하고 회답하니, 구양현은 크게 경탄하여 항복하고 말았다. 이때 목은과 성명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 이것을 비유해서 어느 중국 사람이 목은을 조롱하는 말로,
"인상여와 사마상여는 이름은 서로 같으나 성은 서로 같지 않네."(藺相如 司馬相如 名相如 姓不相如)
하자, 목은은 즉시 대답하기를,
"위무기와 장손무기는 옛날에도 꺼릴 것이 없고 지금에도 꺼릴 것이 없네."(魏無忌 長孫無忌 古無忌 今亦無忌)
하였더니, 그 사람은 일어서서 절하면서,
"동방에는 이런 글재주가 있으니 우리가 공경하지 않을 수 없도다."
하고 목은을 자기들의 스승으로 대우했다는 이야기다.
아아! 목은의 이 세 차례의 회답한 글은 다만 대구로서만 용할 뿐이 아니라, 실로 문장과 이치가 모두 구비해서 하늘의 조화로 자연을 이루어놓은 것과 같으니 실로 그는 동파(東坡)나 그밖의 이와 대등한 여러 사람에게 못지 않다 하겠다.
<순오지>

7. 김일손의 편지

김일손(金馹孫)이 젊었을 적부터 재주가 있다는 소문들이 사방에 퍼져서 한 무장(武將)이 사위로 삼았다. 그러나 일손은 일부러 문장을 못하는 척 방구석에 들러앉아서 {십구사략}만 읽었다. 산사(山寺)에 올라가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장인에게 편지라도 보낼 일이 있으면 짤막하게 용건만 말할 뿐 인사말 같은 것도 없었다. 하루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문왕이 죽으니 무왕이 나왔다. 주공주공 소공소공 태공태공(文王沒武王出 周公周公 召公召公 太公太公)" 간단하기 짝이 없는 글이요 무슨 말을 썼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장인은 편지를 보고서는 기뻐하는 기색도 없이 얼른 소매 속에 감추었다. 무식한 사위를 둔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 때 마침 글 잘하는 선비 한 사람이 한자리에 있다가 김일손의 편지라기에 한 번 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어나서 그 장인에게 편지를 좀 볼 수 없느냐고 하였는데 장인은 굳이 감추고 보여 주려고 하지 않는다. 나중에는 떼를 써서 억지로 빼앗아 보니 실로 어처구니 없는 글자들 뿐이었다. 그러나 그 선비는 필시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두번 세번 거듭 읽어 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색이 공손해지면서 몸을 바로 하였다. '실로 천하의 기재로다.' 그 선비가 풀어본 글의 뜻은 이러하였다. 문왕의 이름은 창(昌)이요, 무왕의 이름은 발(發)이다. 창은 방언으로 신발 밑을 창이라 하고 발은 사람의 발과 음이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창이 죽어서 발이 나왔다는 말은 곧 신발 창이 떨어져서 발이 밖으로 나왔다는 뜻이었다. 또 주공의 이름은 단(旦)이니 이것은 아침을 이르는 조(朝)요, 소공의 이름은 석(奭)이니 이것은 즉 저녁 석(夕)과 음이 같은 것이다. 태공은 망(望)이니 이것을 정리하면 조조석석망망(朝朝夕夕望望), 즉 아침마다 저녁마다 바라고 바란다는 말이었다. 곧 신발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그 장인은 크게 기뻐하여 곧 신발을 사서 보내주었다.
<어우야담>

8. 연암의 술낚시

조선 정조팔·구년경의 일이었다. 기나긴 봄날의 해가 서산에 걸릴 때 서울 남산골에 살고 있었던 현직 승지 이모가 그날밤 당직이어서 시간을 맞추어 대궐에 들어가기 위하여 북다른재(현 명동 천주교당)에 이르니 길가의 조그마한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문 앞에 팔척 장신인 헙수룩한 중노인이 망건도 쓰지 아니한 머리에 정자관(程子冠)만 삐뚜름하게 얹고 섰다가 이승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지나가는 승지의 남여(藍與) 앞을 가로 막고 두 팔을 들어 길게 읍을 한다.
이승지는 난데없이 길 가에서 초면 인사가 그것도 몸차림마나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인사를 받은 이상, 하는 수 없이 남여에서 내려와 답례로 읍을 하였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이승지더러
"영감 이 집이 내 집이오. 잠간 들어와 수어(數語)나 합시다" 한다.
이승지는 첫째 그 다답지아니한 모양도 는꼴이 틀리고 들째로 번(番) 시간도 되었으므로
"지금은 공무로 입직하러 가는 길이니 이 다음에 다시 심방(尋訪)하겠소"
하며 남여로 올라가려 하니 그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기세도 대단하게 승지의 길을 막았다. 이승지에게 그 사람은
"아따! 근근(近君)하는 시종신(侍從臣)이라 자세가 대단하군. 해가 아직 늦지 아니했는데 담배 한대 피우고 갈 여가도 없단 말이오"
한다. 이승지는 그 사람의 책망 비슷한 말씨에 할 수 없이 발을 돌려 그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살펴보니 먼지가 가득한 한간 방이나 웃목에는 서책이 가득하였다. 주인은 다시 승지에게 읍하고 아랫목에 놓인 초방석(草方席)으로 인도하니 승지는 그 말대로 그 방석에 앉았다. 그 다음 주인은 아무 말없이 앉았다가 안문으로 향하여
"손님이 오셨으니 술 내오너라"
고 한다. 조금 뒤에 헌 누더기로 간신히 앞을 가린 여하인이 걸직한 막걸리 한 뚝배기와 프르둥둥한 서산 상 사발 하나와 김치 한 보시기를 모 떨어진 소반에다 얹어 내다놓으며 손님을 기웃기웃 쳐다보고 간다. 주인이 그 상을 손님 앞에 놓고 뚝배기에서 상사발에다 막걸리를 따르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이승지는 당초부터 주인이 하는 짓이 이상하여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마음이 불안한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중인데 그 막걸리 따르는 것을 보고 속마음으로 크게 놀래어 불안하였다.
'자 막걸리를 먹으라고 하면 어쩔까'
하고 주인의 거동만 주시하고 있었다. 술을 따라 놓고도 말없던 주인은 혼잣말로
"귀한 손님이 이러한 막걸리를 자실 수야 있나 내나 마시지."
하고는 훌쩍 들어마시고는 김치국을 조금 마신 뒤에 다시 한사발을 더 따루어 놓더니
"이것은 내 차례니 손님의 말 기다릴 것 있나?"
라고는 또 훌쩍 들어마신다. 그리고 나서는 안문으로 향하여
"술상 내가라"
고 한다. 승지가 살펴보니 뚝배기 술이 원래 두 사발 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여하인이 와서 상을 치운 뒤에 주인은 승지에게 다시 읍하고
"영감 대단히 미안하오. 오늘 영감이 내 술 낚시에 걸렸소. 바쁘실 텐데 어서 가십시오."
한다. 이승지가 답례를 하며
"대체 단신은 누구시며 술 낚시라는 것은 무슨 말씀이오."
하고 물었다. 승지의 물음에 대하여 주인은 껄껄 한바탕 웃고 나서
"술 낚시질꾼 성명은 알아 무엇하겠소. 내 집이 가난하고 내가 술을 좋아하므로 가속이 간신히 반주 한잔씩은 준비하여 주나 다시는 아니 주고 손님이 오셨다면 손님술 대작할 한 잔을 내보내 주는구려. 오늘도 저녁에 술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얻어 먹을 방법이 없고 보니 통정할 수 있는 친구가 혹 지나가면 들어오라 하여 술을 낚구어 낼가 하고 문 앞에서 기다렸으나 오늘은 아무도 못 만났기에 해는 저물어가고 해서 초조하여지는데 마침 영감이 지나가시니 인급계생(人急計生)이라고 내가 영감을 내 집으로 유인하여 집에만 들어오시게 하면 내 계획은 달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불고체면하고 인사를 청한 것이나 인사를 아니 받으셨다면 모르겠거니와 받은 이상에는 초면 치구를 괄시는 못하는 것이라 꼭 따 라 오실 것이 아니오. 나는 이 방에 손님이 있는 것만 보이면 술은 마실 수 있거든여. 아까 계집하인이 기웃기웃한 것은 전에 내가 없는 손님을 있다 하고 술을 낚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뒤로는 손님 술을 내왔다가도 손님이 없으면 도로 가져가는구려. 그래서 참말로 손님이 있나 없나 보아 없으면 도로 가져가려고 기웃거린 것이오. 오늘의 이 신기 묘산이 적중하였으니 누추한데 오래 앉아 계실 것이 없소. 어서 가오."
하며 문 밖까지 전송을 하여주는 것이었다. 그 집에서 나와 다시 남여를 타고 대궐로 향하는 이승지는 방금 자기가 당한 일이 맹랑하기도 하거니와 그보다도 술꾼의 술낚시질의 이용물 노릇을 한 것이 지극히 분하였다. 그날 밤 승정원에서 이승지와 함께 번을 들은 승지 남공철이 이승지의 안색이 좋지 못함을 보고
"오늘 밤에는 영감의 기색이 좋지 못하니 댁에 무슨 연고가 생겼소?"
한다. 이승지는 쓴 웃음을 지으며
"집에는 별 일 없지만 오는 길에서 괴상한 일을 당하였기 마음이 편치 못하오."
하면서 오는 길에 당한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때에 承傳邑 내시가 나와 상감마마께옵서 입직한 승지를 부른다고 한다. 승지가 명에 의하여 어전으로 입시하니 정조가 하교하되
"오늘 밤은 하도 심시하기에 시종신들과 한담으로 소견할가 하여 부른 것이다."
하며 옥당들의 주담(奏談)이 끝난 뒤에 두 승지를 바라보시며
"너희들도 말을 해보아라."
하시는 것이었다. 이승지가
"오늘 번들어 오는 길에 당한 일을 말하려고 했으나 비설(鄙屑)하여 못 아뢰나이다."
하니 정조는
"군신의 사이는 가인 부자와 같으니 친구에게 말하려던 것을 임금에게 어찌 말 못할 것이냐. 본대로 당한대로 말하라"
하신다. 이에 이승지는 오늘 입궐하러 들어오다가 북다른재에서 당하였던 일을 자세히 주달하는데 도중에서
"술을 따라 놓고도 권하지 않더라……"
는 구절까지 이르렀을 때 정조가 싱그레 웃으시면서
"그만치만 들어도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짐작하겠다"
고 하신다. 이승지가 그 다음 일을 다 아뢴 뒤에
"신은 그 사람이 실성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고 부언하니, 정조가 다시 웃으시며
"그 사람이 실례한 것이 아니라 네가 몰지식하다. 너는 문과도 하고 벼슬도 하였으나 사책에 오르지 못하되 그 사람은 지금은 방달한 미친 사람 비슷하지만 사책을 빛낼 사람이다. 그 사람이 정녕코 박지원일 것이다"
하시니 이승지는 자기가 고루하여 문봉으로 일세를 능가하는 연암선생 박지원을 못 알아 본 것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물러 나왔다. 그 옆에 시립하였던 남공철이 다시 부복하여 아뢰기를
"전하의 지금 하교를 듣자오니 옛말의 지신막여군(知臣莫如君)이 적실한 말씀이외다. 성명지치(聖明之治)에 아래에 그런 사람이 봉초( 草)에 매몰되면 옥의 티같이 성루가 될까 합니다. 이미 통촉하셨으니 유현(遺賢)의 탄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하였다. 정조가 남승지에게 대답하시기를
"내가 유현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박지원의 문장이 섬부(贍富)는 하나 정도로 아니 나가고 권도로 나가므로 그 버릇을 징계하려고 모르는 체하였더니 그대도록 기한에 빠진 것을 몰랐다."
하시고 즉시 초임을 시키시고 일년 이내에 안의(安義) 현감을 제수하셨다. 박연암은 소년시대에는 경제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이다. 시대가 허용을 아니하니 다시 문장변으로 들어가서 사백년래에 내려오던 고문사체를 개혁하려 하니 박제가, 이덕무, 김매순 등이 다들 그의 문도라, 이고증(泥古症)에 걸린 당시 문사들이 연암을 이단이라고까지 지목하고 정조에게 박지원은 세상을 버려놓은 사람이라고 아뢰어 정조도 그를 미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박연암은 자기의 초지를 그대로 굳게 지키어 흔들리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인도 남편이 세상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본뜻을 지키기 위하여 그러는 것이라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바느질 품도 팔고 갖은 고초를 당하여 가며 밤에 글 읽을 때 쓸 초와 좋아하는 술은 조금씩 이어주되 술의 거성인 연암을 만족되게까지 할 재력은 없으므로 매일 한두잔 정도의 술도 그 夫人이 진심 갈력하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술 생각이 나면 연암은 가끔 그러한 짓을 하였던 것이며 그 날은 공교롭게도 입직할 승지에게 걸리어 큰 출세는 못되었어도 술의 해갈만은 면할 수 있는 길이 정조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었다.
<오백년기담일화>

- 우리 고전 속에서 선인들의 생활지혜와 해학이 넘쳐 흐르는 작품 중에서 선덕여왕의 지혜, 공당문답 등 8가지를 실었습니다. -







흥 부 전 2003.11.25 | 조회수 : 730



원문 파일 File 1 : 흥부전.hwp





(전략)

이리하여 흥부는 좋은 집에서 처첩을 거느리고 향락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소문이 놀부 귀에 들어가니,

"이놈이 도둑질을 했나? 내가 가서 욱대기면 반 재산을 뺏어낼 것이다."

하고 벼락같이 건너가 닥치는 대로 살림살이를 쳐부수는 것이었다. 한참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을때 마침 출타 중이던 흥부가 들어왔다.

"네 이놈, 도둑질을 얼마나 했느냐?"

"형님 그 말씀이 웬 말씀이오?"

흥부가 앞뒷일을 자세히 말하자, 그럼 네 집 구경을 자세히 하자고 놀부는 나섰다. 흥부가 형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집 구경을 시키는데 월궁 선녀가 다시 나타나니 놀부는 그 계집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다. 흥부가 거절하자 이번은 화초장이나 달라고 한다.

그러고는 흥부가 화초장을 하인을 시켜 보내주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스스로 짊어지고 가서 집에 이르니 놀부 아내는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리고 그 출처와 흥부가 부자가 된 연유를 알게 되자,

"우리도 다리 부러진 제비 하나 만났으면 그 아니 좋겠소?"

하고는 그해 동지 섣달부터 제비를 기다렸다.

그렁저렁 섣달 정월 다 넘기고 봄철이 돌아오니 제비 한 쌍이 놀부집에 와 흙과 검불을 물어다 집을 지었다. 어미 제비가 알을 낳아 품을 무렵에는 놀부놈은 주야로 제비집 앞에 대령하여 가끔가끔 집어내어 만지작거리니 알이 모두 곯았다. 그러나 천행으로 한 개가 남아서 새끼를 까게 되었다.

차차 자라나 바야흐로 날기를 배울 때 주야로 기다리는 구렁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놀부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여 하루는 뱀을 찾아 나갔다. 아무리 찾아도 뱀 한 마리 못 보고 돌아오는 길에 홍두깨만한 까치 독사를 만났다.

"얼씨구 이 짐승아, 내 집으로 가서 제비집으로 올라가면 제비 새끼 떨어지고 나는 부자가 될 것이니, 네 은혜는 병아리 한 뭇에 계란 한줄 더 얹어 갚을 것이다. 그러니 사양 말고 어서 가자."

이러고 막대기로 툭툭 건드리다 놀부는 발가락을 물리고 나자빠졌다.

그러나 빨리 집으로 돌아와 침을 맞고 약을 바른 끝에 살아나자, 제가 이무기인 양 제비 새끼 잡아 두 발목을 지끈등 분지르고는 흥부가 했던 것같이 조기 껍질로 발목을 싸고 청올치로 찬찬 동여매어 제비집에 얹어 두었다.

그 제비가 겨우 살아남아 남으로 돌아갈 때 하는 말이,

"원수같은 놀부놈아, 명년 춘삼월에 다시 와서 원수를 갚을 것이니 잘 있거라. 지지위지지."

이듬해 춘삼월에 그 제비는 '보수박'이라 쓰인 박씨를 물고 돌아왔다.

놀부가 보고 풀밭에 떨어지면 잃어버릴까 겁이 나서 삿갓을 뒤집어들고 따라다녔다. 제비는 그 삿갓 속에 떨어뜨렸다. 한 치나 되는 박씨에 보수박이라 쓰였으나 무식한 놀부는 그것을 모르고 처마밑에 심었다.

며칠이 안 가서 순이 나고 덩굴이 뻗고 이윽고 박이 주렁주렁 열리게 되었다. 놀부는 큰 박 하나를 우선 따다 놓고 제 계집과 켜려 하다가 그 박이 쇠같이 딱딱하므로 저희끼리는 할 수 없게되자 목수와 힘깨나 쓰는 장정들을 불러 잘 먹인 후에, 이십 냥씩 선금 후히 주고 박을 켜게 하였다.

그리하여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박 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나면서 이윽고 관을 쓴 늙은 양반, 갓을 쓴 젊은 양반, 초립 쓴 새 서방님, 도포입은 도련님이 달아 매고 참나무 절굿공이로 짓찧었다.

"이놈 놀부야! 네 아비 개불이와 네 어미 똥녀가 댁종으로 드난살이 하다가 오밤중에 도망한 지 수십 년이 되는데 이제야 찾았구나. 네 어미와 아비 몸값이 삼천 냥이다. 당장에 바쳐라."

놀부놈이 돈 삼천 냥을 들여 바치며 사죄하니 그 생원님 못 이기는체하고 놀부에게,

"이 돈 삼천 냥 용전으로 쓰겠거니와 떨어질만 하면 내 다시 오리라."

하고 사라졌다.

다시 두번째 박을 타보았다. 이번에 가야금 든 놈, 소고 든 놈, 징, 꽹과리 든 놈들이 우루루 몰려 나오더니,

"우리가 놀부 인심 좋다는 말 듣고 일부러 찾아왔으니 한바탕 놀고 가세."

하고 쌀 섬 내놔라, 돈 백 내놔라며 정신없이 날뛰니, 놀부는 돈 백 냥에 쌀 한 섬을 주어 보낸 후 또 한 통을 탔다. 이번엔 노승이 나오고 뒤따라 상좌승이 나왔다.

"놀부야, 우리 스승님이 네 집을 위하여 사십구 일 정성을 드렸으니 돈 오천 냥만 바쳐라."

이 이상 패가망신하지 말고 그만 켜자는 놀부 계집의 말을 어기고 또 켜니 이 번엔 상여 한 채가 나오고 뒤따라 각양각색의 병신 상제들이 나왔다.

"야 이놈 놀부야, 소 잡고 잘 차려라. 돈 만 냥만 내놓아라."

놀부가 전답을 선 자리에서 헐값으로 팔아 돈 삼천 냥을 주고 빌며 사정하니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갔다. 놀부는 따라가며 물어 보았다.

"여보, 다른 통에 보물 아니 들었소?"

상두꾼이 대답하였다.

"어느 통에 들었는지 모르나 생금 한 통이 들기는 들었소."

놀부놈이 '옳다' 하고 슬근슬근 박 한 통을 다시 툭 타놓으니 박 속에서 팔도 무당들이 뭉게 뭉게 나오는데, 징과 북을 두드리며 각색 소리다 하더니 장고통을 들어 놀부놈의 가슴팍과 배때기를 벼락치듯 후려쳤다. 놀부놈은 눈에서 번갯불이 나는지라 분한 가운데서도 슬피 울며 비는 것이었다.

"이 어찌된 곡절이오? 매 맞아 죽을지라도 죄명이나 알고 죽으면 한이 없겠으니 제발 덕분에 말해주오."

"이놈 놀부야, 다름 아니라 우리가 네 집을 위하여 굿을 많이 했으니 오천 냥을 바쳐라. 만일 거역하는 날엔 네 머리가 온전치 못하리라."

놀부놈은 기겁을 하여 돈 오천 냥을 내주고 겨우 그들을 보내고 나니 열이 치받쳤다.

"될테면 되고 망할 테면 망해라. 남은 박을 또 계속 타보리라."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이게 웬일인가? 박속에서 수천 명 등짐 장수들이 누런 농을 지고 꾸역꾸역 나오더니 정신없이 떠들어댔다. 놀부놈이 기가 막혀 다른 박이나 타보려고 돈 삼천 냥을 내놓으니 그들은,

"뒷 박통에는 금과 은이 많이 들었을 것이니 정성 들여 켜보아라."

하고 일시에 물러나 사라졌다.

그 다음 또 한 통을 따다놓고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이번엔 박 속에서 수천 명 초라니 탈이 나오면서 오도방정을 다 떨었다. 그러고는 일시에 달려들어 놀부놈의 덜미를 잡고 메다꽂으니, 놀부는 거꾸로 서서,

"애고 애고 초라니 형님, 이게 웬일이오? 뭐든지 말씀만 하시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애걸하였다. 그러자 초라니가 호령하였다.

"이놈 놀부야, 돈이 중하냐 목숨이 중하냐?"

"사람 생기고 돈이 났으니 돈이 어찌 중하겠습니까?"

초라니가 다시 꾸짖었다.

"이놈, 그러면 돈 오천 냥만 시각 내로 바쳐라."

놀부는 할 수 없이 돈 오천 냥을 내주었다. 그리고 물어 보았다.

"다음 박통 속 일이나 자세히 일러 주소."

"어느 통인지 분명히 생금이 들었으니 다 타보아라."

슬근슬근 툭 다음 박을 타놓으니 박 속에서 수백 명 사당걸사들이 나오면서 작은 북을 두드리며 저희끼리 야단스럽게 놀아나며 소리를 하더니 놀부를 보고 달려들었다.

"옳지! 이놈 이제야 만났구나!"

여러 놈이 놀부의 사지를 갈라 잡고 헹가래를 치니 놀부놈 눈이 뒤집히고 오장이 나오는 듯하였다.

"네 놈이 목숨을 보전하려면 전답 문서 다 바쳐라."

문서 뭉치를 다 내주고 또 다음 박이다.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박 속에서 수백 명의 왈패들이 밀거니 뛰거니 뛰쳐나왔다.

누구 누구냐? 이죽이.떠죽이.난죽이.바금이.딱정이.군평이.태평이.여숙이.무숙이.하거니.보거니.난쟁이.몽둥이.아귀소.악착이.조각쇠.섭섭이.든든이 등이다. 그들은 차례로 앉더니 놀부를 잡아 빨랫줄로 찬찬 동여 나무에 동그마니 달아매고 매질 잘하는 왈패 한 놈을 가려 뽑아 분부하는 것이었다.

"저놈을 사정 두지 말고 세게 쳐라!"

여러 놈이 한쪽으로 놀부를 잡아 내어 이 뺨 치며 발로 차고, 뒹굴리며 주무르고 잡아뜯고, 한편으로 주리를 틀며, 매질을 하며, 두 발목을 도지개에 넣고 트니 복숭아뼈가 우직우직하는 것을 용심지에 불을 당겨 발샅에 끼어 당근질을 하며, 온갖 형벌을 쉴 새 없이 갈아들며 하니 쇠공이의 아들인들 어찌 견뎌내리오?

"살려 주오! 살려 주오! 제발 덕분에 살려 주오. 돈 바치라면 돈 바치고 쌀 바치라면 쌀 바치고 계집 바치라면 바칠 것이니 남은 목숨 살려 주오!"

여러 왈패들이 돌아가며 한 번씩 생주리를 틀더니, 그제서야 한 놈이 분부하였다.

"이놈 놀부야, 들어라! 우리가 금강산 구경을 가는데 노자돈이 떨어졌으니, 돈 오천 냥을 바치되 만약에 지체하면 된급살을 내리리라!"

놀부놈은 어찌나 혼이 났던지 감히 한 말도 대꾸하지 못한 채 돈 오천 냥을 주어 보낸 후에 사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중에도 끝내 허욕을 버리지 못해 당장에 수가 터질 줄로 알고, 엉금엉금 동산으로 기어 올라가서 다시 박 한 통을 따가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춤거리는 인부를 달래어,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기어라 톱질이야."

슬근쓱싹 박을 쪼개어 놓고 보니 팔도 소경이란 소경은 다 뭉치어 막대기를 닥닥거리며 눈을 희번덕거리고 내달아 꾸짖었다.

"이놈 놀부야! 날려느냐? 기려느냐? 네놈이 어디로 갈 거냐? 너를 잡으려고 안남산, 밖남산, 구계동, 쌍계동, 면면촌촌을 얼레빗으로 샅샅이, 이 참빗으로 틈틈이, 굴뚝 차례로 두루 널리 찾아 다녔는데 오늘에야 이곳에서 만났구나! 네 우리들의 수단을 한 번 보렷다!"

그러고는 지팡막대를 들어 휘두르니 놀부놈 어찌할 바를 몰라 이리 저리 피하나 여러 수경들은 점을 치며 눈 뜬 사람보다 더 잘 찾아 붙잡는다. 그러니 놀부놈은 달아나지도 못하고 애걸하는 것이었다.

"여보 장님네들, 이게 웬일이오? 사람을 살려 주오. 무슨 일이든 분부대로 하리다."

소경들이 그제서야 놀부를 놓아 주고 북을 두드리며 경을 읽더니, 놀부놈을 지팡이 두드리듯 함부로 치니 놀부놈을 견디다 못해 돈 오천 냥을 내어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집안에 돈이라곤 한 푼도 남은 게 없이 가산을 탕진했으니 이젠 살아갈 길이 막연하구나! 이왕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해보면 설마하니 끝에 가서야 길한 일이 없으랴?"

그러고는 다시 동산으로 올라가서 박 한 통 따다놓고,

"이번 박은 겉을 보건대 빛이 희고 좋으니 이 속엔 응당 보화가 들었을 것이니 정성 들여 타보자!"

하고 한동안 켜보다가 궁금증이 나서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보니 박속에서 우뢰같은 소리가 진동하며,

"비로라! 비로라!"

하므로 무더기로 큰 탈이 또 나는 줄 알고서 톱을 내던지고 달아나려 하자 다시 박 속에서 우뢰같은 호령이 터져 나왔다.

"너희가 왜 박을 아니 타느냐. 내가 답답하여 한때를 못 견디겠으니 어서 켜라!"

놀부가 겁을 먹고 물었다.

"'비'라 하시니 무슨 비인지 자세히 말씀하시오."

"이놈, 비로라.!"

놀부가 다시 물었다.

"비라 하시니 양귀비입니까? 누구신 줄이나 먼저 알고 박을 마저 켜겠습니다."

"나는 그런 '비'가 아니라 연나라 사람 장비거니와 네가 만일 박을 아니 켜면 무사하지 못하리라."

놀부가 장비라는 말을 듣더니 매우 놀란 듯 목안의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은가? 이번엔 바칠 돈도 없으니 죽는 도리밖에 없나 보다."

박을 타던 인부가 비웃으며 말을 받는다.

"너는 네 죄로 죽거니와 내야 무슨 죄로 죽는단 말이냐? 그런 말 다시 하다가는 내 손에 먼저 죽을 줄 알아라!"

"허튼 소리 말고 어서 타던 박이나 마저 타서 하회나 보세."

놀부가 할 수 없이 마저 타고 보니 별안간 대장군 한 사람이 와락 뛰어 나오는데 얼굴은 숯먹을 갈아 끼얹은 듯이 꺼먼 것이 제비 턱에 고리 눈을 부릅뜨고서 장팔 사모 큰 창을 눈 위로 번쩍 들고 인경같은 소리를 우뢰같이 질렀다.

"이놈 놀부야, 네가 세상에 태어나 부모께 불효요, 형제에게 불목하고 친척과 불화하니 죄악이 네 털을 빼어 세어도 당치 못할 것이다. 천도가 어찌 무심할까 보냐. 옥황상제께서 나를 시켜 너를 '모든 방법으로 한없는 죄를 씻게 하라'하시기에 내가 특별히 왔으니 견뎌보아라."

그러고는 움파같은 손으로 놀부의 덜미를 달려들어 잡고서 공기 놀리 듯하니, 놀부놈은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 울며 애걸 복걸 하였다. 장군은 그 정상을 불쌍히 여겨 꾸짖고 떠나갔다.

"응당 너를 여러 토막 낼 것이지만 십분 생각하고 용서하는 것이니 이후는 어진 동생을 구박 말고 형제 화목하게 살도록 하라."

놀부는 생짜로 경을 치르고 겨우 정신을 수습하자, 다시 동산으로 올라가 보니 박 두 통이 남아 있으므로 한 통을 또 따가지고 내려왔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겨 주소 톱질이야. 이 박 켜거들랑 금은보화 사태같이 나오너라. 흥부같이 살아 보리라."

놀부 계집이 곁에 서 있다가 한 마디 던지는 것이었다.

"다른 보화는 많이 나오되 흥부 아주버니같이 첩만은 나오지 마소서."

놀부는 당장에 꾸짖었다.

"가산을 탕진하고 살림이 결단나서 상거지가 된 것이 샘이 어디서 나오는고. 소란스럽게 굴지 말고 한편 구석에 가 있거라!"

밀거니 당기거니 슬근슬근 타며 귀를 기울여도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므로 놀부놈 매우 기꺼워하며 인부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다 켜도 아무 소리가 없으니 아마 수가 터질 박이렷다!"

그러고는 급히 타며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없고 다만 평평할 뿐이므로 놀부가 기꺼워할 즈음이다. 인부는 속으로,

'여러 박통마다 탈이 났으니 이 박이라고 어찌 무사하랴?'

하고는 소피하러 가는 체하며 도망쳤다.

놀부는 인부를 기다리다 못해 박통을 도끼로 쪼개고 보니 아무것도 없고 다만 허연 박속이 먹음직하므로 제 계집 시켜 끓이게 하였다. 그리하여 온 집안 식구가 한 사발씩 달게 먹고 나니 놀부는 배가 붕긋하여 게트림을 하며 계집에게 말하였다.

"그 국맛이 매우 좋아, 당동!"

"글쎄요, 그 국맛이 매우 유명하오. 당동!"

놀부의 자식들이 제 어미를 부르면서 말하였다.

"이 국맛이 좋소, 당동!"

놀부가 다시 말하였다.

"글쎄요? 나도 그 국을 먹고 나니 당동 소리가 절로 나오. 당동!"

놀부의 자식이 말하였다.

"어머니 우리들도 그 국을 먹고 나니 당동 소리가 절로 나오. 당동!"

"오냐 글쎄 그렇구나. 당동!"

놀부놈은 은근히 화가 치받쳐서 꾸짖었다.

"너무 요망스럽게 굴지 마라! 당동. 무슨 국을 먹었다고 당동하노? 당동."

놀부 계집이 맞장구를 쳤다.

"그 말이 옳소! 당동."

놀부의 딸도 당동, 아들도 당동, 머슴놈도 당도, 놀부 마누라도 당동, 온집안 식구가 저마다 당동거리니 무슨 가야금이라도 뜯으며 풍류하는 것 같았다.

'부자가 되려고 박을 심었다가 허다한 재산을 다 없애고 전후에 없는 고생을 하고 매를 맞고, 끝판에 와서는 온 집안 사람이 당동 소리로 병신이 되었으니 이런 분하고 원통한 일이 어디 있으리오? 당동.'

놀부는 홀로 신세를 생각하니 분한 김에 낫을 들고 단숨에 동산으로 치달아 올라갔다. 그리고 박 덩굴을 노려보며 헤치니 덩굴 밑에 박 한통이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크기는 인경만하고 무게가 천 근이나 될 것 같았다. 그것을 본 놀부놈은 치받치던 분한 생각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허욕이 번쩍 나서 혼자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제야 보물이 든 박을 얻었구나! 무게로 쳐도 금이 많이 든 모양이요, 재물도 많이 들어 있으므로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덩굴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 공연히 한탄만 했구나! 저 박통에서 나온 초라니 말이 '금이 들기는 어느 박통에 들었다' 하더니, 그 양반 말이 과연 옳다. 황금이 든 박이 예 있을 줄 알았더라면 다른 박은 타지 말고 이 박 먼저 켰을 것을……"

그러고는 기꺼움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 그 박을 따 가지고 내려오며 흥얼거렸다.

"좋을 좋을 좋을씨고? 지화자 좋을씨고!"

슬근슬근 타다가 반쯤 켜고 우선 궁금증이 나서 박 속을 기웃이 들여다보니 그 속이 아주 싯누런 것이 온통 황금 같으므로 놀부놈 좋아라 한다.

"수 났구나! 그럼 그렇지! 마누라, 자네도 이 박 속을 들여다 보게. 저 누런 것이 온통 황금일세."

놀부 아내가 한동안 코를 훌쩍거리더니 되물었다.

"누런 것을 보니 금인가 싶소만 그 속에서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니 그게 웬일이오?"

놀부가 말하였다.

"자네도 어리석은 소리 작작하게. 박이 더 익고 덜 익은 것이 있을 거 아닌가. 이 박은 아주 무르익었으므로 구린내가 나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어서 타고 보세."

슬근슬근 거의 타다가 놀부 양주 궁금증이 또 나므로 톱을 멈추고 양편에 마주앉아 들여다보는데 별안간 박 속으로부터 모진 바람이 쏟아져 나오며 벼락같은 소리가 나더니 똥줄기가 무자위에서 나오는 물줄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놀부 양주는 피할 사이도 없이 똥벼락을 맞으며 나동그라졌다. 똥줄기는 천군만마가 달려오듯 태산을 밀치고 바다를 메울 듯 터져나와 삽시간에 놀부집 안팎채가 똥으로 그득하게 되자 놀부 양주는 온 몸이 황금덩이가 되어 달아났다. 멀찍이 물러나서 뒤돌아보니 온 집안이 똥에 묻혀있는 것이었다.

놀부가 기가 막혀 발을 동동 구르며 탄식하였다.

"여보 마누라,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재물을 얻으려다 재물을 탕진하고 끝장은 똥더미로 의복 한 가지 없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오? 애고 답답 서러워라."

이때 앞뒷집에 사는 양반네들 제 집까지 똥이 밀려와서 그득하게 쌓이게 되자 그 양반들이 고두쇠를 벼락같이 부르더니 분부하는 것이었다.

"빨리 가서 놀부놈을 잡아오너라!"

고두쇠가 새총알같이 달려가서 놀부놈의 덜미를 퍽퍽 눌러 짚고 풍우같이 몰아다가 생원님들 앞에 꿇어 앉혔다.

"이놈 놀부야, 들어라! 양반댁에 쌓인 똥을 해지기 전에 다 쳐내지 못하면 죽을 줄을 알아라!"

놀부놈은 기왓장 위에 꿇어앉은 채 계집을 시켜 돈 오백냥을 갖다놓고 거름 장사들을 닥치는 대로 불러다가 삯전을 후히 주고 똥을 쳐낸 다음에야 겨우 풀려났다.

놀부 내외 서로 붙들고 갈 곳이 없어 통곡하는데, 이때 건너 마을 흥부가 형이 패가망신했다는 말을 듣고 급히 노복을 거느리고 와서 놀부 양주와 조카들을 데리고 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흥부는 안방을 치우고 형님 내외를 거처케 한 다음 의식을 후히 내어 대접하며 위로하고, 한편으로 좋은 터를 잡아 수만금을 아낌없이 들여 집을 짓되 제 집과 같게 하고 세간이며 의복 음식을 똑같게 하여 그 형을 살게 하여 주었다.

그러자 비록 놀부같은 몹쓸 놈일망정 흥부의 어진 덕에 감동하여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형제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흥부 내외는 부귀다남하여 나이 팔순에 이르도록 장수하며 자손이 번성했는데 모두가 사람됨이 빼어나서 대대로 풍족하니, 그 후로 사람들이 흥부의 덕을 칭송하여 그 이름이 백 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 흥부전의 해학적인 부분을 일부 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