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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커넬 샌더스

작성자명관**
조회수1823
등록일2007-07-25 오후 6:44:44
67세 999번의 퇴짜

한 겨울의 시린 새벽바람이 콜로라도 주의 광활한 평원 위에 세워진 낡고 작은 픽업 트럭을 때리고 지나가자 트럭 속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습니다.

뚱뚱한 체구에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는 잠시 차안을 정리하더니 차에서 내려 공중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할아버지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경쾌하게 휘파람을 불면서 세수를 하고 면도까지 마치더니 트럭으로 돌아와 아침밥 대신 어젯밤에 먹다 남긴 식어빠진 치킨을 뜯으면서 하루 일정을 체크했습니다.

잠시 후 해가 떠오르자 할아버지는 하얀색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전날 약속해 둔 레스토랑을 향해 트럭을 바람처럼 몰고 갔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레스토랑 앞에서 무려 세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레스토랑의 문은 열렸지만 프랜차이즈 계약을 하기로 했던 사장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울적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할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사장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사장이 나타났고 할아버지는‘이제 됐다’하고 생각하며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사장을 따라 레스토랑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레스토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얀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환갑의 노인이 마치 온 세상의 고민을 다 짊어진 듯한 얼굴로 슬프게 서 있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구백 구십 아홉 번째!

할아버지는 전국의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자신의 프랜차이즈 사업계약을 하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오늘까지 도합 구백 구십 아홉 곳의 레스토랑에서 퇴짜를 맞은 것입니다.

“몇 년 뒤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무슨 비참한 꼴이냐!”

이런 생각이 들자 이제껏 낙담이라고는 몰랐던 할아버지에게도 슬픔이 밀물처럼 몰려와 두 눈 가득 이슬이 고이게 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레스토랑 앞에서 놀고 있던 아이 몇 명이 다가와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하얀 옷을 입었어요? 그리고 아까부터 왜 계속 레스토랑 앞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 서 있기만 하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에 고인 눈물을 쓱 하고 닦아내더니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허허허, 우리 어린이 친구들이 할아버지가 레스토랑 앞에 왜 이렇게 오래 서있는가 구경하고 있었구나. 음, 이 할아버지는 말이야. 몇 년 뒤에 이곳에 거대한 식당을 하나 지을 거란다. 그 식당은 장사가 너무너무 잘 돼서 요리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이 도시의 끝까지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가 될 거란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손님들 앞에 오늘처럼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나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할 거란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너무 맛있어서 뼈까지 녹아버리는 환상의 치킨요리를 드시게 될 것입니다.’라면서 말이지. 그걸 상상하고 있자니 할아버지는 가슴이 떨려서 움직일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단다. 너희들이 말을 걸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할아버지는 이대로 굳어버렸을지도 몰라. 허허허 현재를 보면 슬프기도 하지만 미래를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기만 하구나. 자, 어린이 친구들아. 나중에 또 만나자꾸나. 이 할아버지는 또다시 꿈을 향해 나갈 거란다. 그럼 잘 있으려무나, 허허허.”

인생최대의 난관 속에 최고의 성공이 숨어 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상표를 단 음식점 앞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을 서 있는 모습 하나만을 그리면서, 또 다시 기약 없는 여행길에 오른 66세의 할아버지는 그 뒤로도 무려 101곳이 넘는 레스토랑에서 퇴짜를 맞게 됩니다.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잡상인으로 오해하고 설거지물을 끼얹기도 했고, 또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아들 뻘 되는 사장이 이제 그만 나이를 생각하고 쉬라는 내용의 거만한 설교를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거절을 자신의 거절로 연결시키지 않았습니다.

“우리 레스토랑에서는 당신의 요리를 취급할 수 없다”라는 거절의 말을 무려 1,100곳이 넘는 레스토랑에서 들으면서도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여 스스로에게 “그래, 내 요리는 형편없어. 아마 나는 단 한 건의 계약도 따내지 못할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내 요리는 완벽해. 나는 할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65세의 나이에 트럭에서 잠을 자고 공중화장실에서 세면을 하는 생활을 3년 넘게 계속했지만 그는 절망하는 대신 희망을 가졌고, 우는 대신 웃었습니다.

방황하는 대신 행동했고 자포자기하는 대신 세상을 감싸 안았고 신을 원망하는 대신 기도를 했습니다.

커넬 샌더스

사우던 철도회사, 노 포크 앤드 웨스턴 철도 회사, 일리노이 센트럴 철도회사, 변호사, 펜실베니아 철도회사, 보험회사 영업사원, 페리보트 경영자, 상공회의소 비서, 램프제조 판매업자, 미셸린 타이어 영업사원....... 어떤 회사에 들어가든 결국 해고를 당했고, 어떤 일을 하든 실패만 했던 그였습니다.

그러다가 49세에 ‘샌더스 까페’를 짓고 이후 16년 동안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내 인생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인생 최대의 난관이 닥쳐왔습니다.

샌더스 까페는 고속도로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팔았는데, 까페 너머에 새로운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그의 까페에 찾아오던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그가 가게를 처분하고 손에 쥔 돈은 단돈 105달러, 우리 돈으로 달랑 10만 5천 원뿐이었습니다.

이제껏 쌓아올린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그는 절망하는 대신 “나에게 은퇴라는 말은 없다. 어떠한 역경이 닥쳐와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나는 계속 움직일 것이다.” 라고 말하며 각오를 다지고 새로운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의 꿈은 16년간 운영하면서 익힌 맛있게 닭을 튀기는 방법을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68세에 1,101번째 레스토랑에서 첫 번째 프랜차이즈 계약을 따내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사업은 오늘날 세계 80개국, 1만 개 이상의 점포에서 KFC 라는 상표를 달고 연간 약 25억 인분의 식사와 약 47억 개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KFC 매장 앞에 가면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지팡이를 팔에 건 할아버지 한 분이 그 옛날 처음 프랜차이즈 계약을 하러 다녔던 그 복장 그대로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이름은 커낼 샌더스 - 바로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KFC 의 창설자입니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무일푼에서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실패와 좌절의 경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공부의 하나랍니다. 자신이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하찮게 평가하지 마세요. 현실이 슬픈 그림으로 다가올 때면 그 현실을 보지 말고 멋진 미래를 꿈꾸세요.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세요. 인생 최대의 난관 뒤에는 인생 최대의 성공이 숨어 있답니다.”

-커넬 샌더스(Colones H. Sanders, 65살에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KFC를 창업한 미국 사업가)